넷플릭스 드라마 ‘돌풍’, 제목 처럼 전체 12회가 휘몰아칩니다. 그렇게 ‘돌풍’이 지난 뒤에 내가 본 것은 무엇일까 가만히 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넷플릭스 드라마 돌풍에 대한 주관적 후기 ‘돌풍에 있는 것과 없는 것’ 살펴 보겠습니다.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나 돌풍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순진함은 있고 인간에 대한 믿음은 없다
국무총리 박동호가 대통령 장일준을 시해하면서 ‘돌풍’은 몰아치기 시작합니다. 박동호는 장일준의 심장을 멈춰서라도 세상을 보다 깨끗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박동호는 한 때 세상의 정의를 위해 괴물과 맞섰던 장일준과 정수진 같은 인물들이 그들과 같은 괴물이 된 끔찍한 세상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돌풍 정보 보러가기)
박동호는 세상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이 오물을 뒤집어 쓸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박동호는 이전까지는 아마도 원칙주의자였을 것입니다. 그의 친구들(죽은 서기태_의회주의자, 현직 검사 이장석_법을 중시하는 법치주의자)만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동호는 세상의 오물을 치우기 위해 원칙에서 벗어난 행동들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립니다.
그렇다면 박동호 사후 세상은 박동호가 생각하는 대로 오물이 사라지고 보다 나은 세상이 되었을까요? 얼핏 보면 희망이 보이기도 합니다. 정수진, 조상천(극우 정치인), 강영익(재벌총수)등과 함께 세상의 때가 묻은 의원들을 추려 정리하고 반대로는 깨끗한 의원들을 모아 ‘방주’에 실었으니 어쩌면 조금 나은 세상이 찾아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책임하고 순진한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노아의 방주 이후 세상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오물을 끌어 안고 희생하면 세상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은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그것은 박동호의 말 속에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한 정치가 옳은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박동호의 죽음과 오물들의 구속과 같은 충격 효과는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박동호가 생각한 좋은 세상이 아마도 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박동호가 생각한 ‘자신을 위한 정치’가 널리 퍼지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박동호의 정치가 널리 퍼지지 못한 것은 박동호가 ‘인간’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 너머 ‘인간’을 박동호는 보지 못했습니다. 박동호의 ‘자신을 위한 정치’는 좁았습니다. 집무실 문을 넘기도 버거웠고, 박동호 ‘가족’에게도 닿기 어려워 보입니다. 박동호는 일부(정치인, 검찰 등 지도층)가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순진하고 한계가 분명합니다.
둘 돌풍에는 권력을 가지려는 자들의 욕망은 있고 대중과 언론은 없다.
드라마 돌풍을 보다가 멈추는 것이 힘들었다면 그것은 사건 전개, 서로를 향해 보이지 않는 칼을 주고 받는 긴장감이 계속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맞섭니다. 그들에겐 권력을 가져야할 이유가 있고 욕망이 있습니다. 욕망을 위해서라면 가진 걸 지키고 방해가 되는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그들은 거침이 없습니다. 대통령을 시해하고 그 사실을 은폐할 정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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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어마어마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질 때 이야기 속에는 ‘대중’과 ‘언론’은 없습니다. ‘언론’은 그저 검찰이나 청와대, 정당에서 흘려주는 이야기를 받아 널리 알리는 스피커일 뿐입니다. ‘대중’은 자신의 믿음과 이해에 따라 언론 보도를 보고 1차원적 반응만 보입니다. 이강백 ‘파수꾼’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우매한 대중’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돌풍 속 대중들은 깨어날 줄 모르고 언론은 제 역할을 할줄 모릅니다. 중심인물들은 자신의 입맛에 따라 이런 대중과 언론을 이용합니다. 이런 모습들의 사건의 속도감을 더해 주지만 사건의 깊이를 더 하지는 못합니다.
대중의 무지, 언론의 무능한 모습은 분명 현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풍 속에서 대중과 언론이 그런 모습으로만 그려지는 것은 아쉽습니다. 대중 속에서 언론 속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찾았다면 사건 전개 속도는 조금 느려졌겠지만 분명 이야기는 더 깊어졌을 것입니다.
셋 돌풍에는 속도감은 있고 개연성과 깊이는 없다.
돌풍은 사건들을 휘몰아쳐갑니다. 그 속도감과 대체로 잘 짜여진 구성은 분명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더 합니다. 이는 돌풍을 집필한 작가의 전작에서도 볼 수 있는 장기이기도 합니다. ‘대통령 시해’라는 강력한 사건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인물’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처음부터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몰아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사이 사이 개연성이 떨어지는 곳도 있습니다. 나아가 중심인물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매몰되어 깊은 사고를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향한 다양한 플랜은 있지만 ‘근본적인 고뇌’나 예기치 못한 충돌은 적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수진은 짧은 고민 뒤 자신의 원수와도 같은 조상천과 손을 잡습니다. 박동호는 세상의 오물을 치우기 위해 원칙에서 벗어난 행동 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도 모호해집니다. 슬그머니 양비론이 자리하기 좋습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상황이 펼쳐지는 가운데 우매한 대중들과 게으른 언론도 한몫 하면서 정해진 결말을 향해 속도를 높여갑니다. 박동호의 죽음 그리고 인과응보. 블랙홀 같은 결말은 일면 시원하지만 아쉽기도 합니다.
돌풍에서 인물들은 그저 목적(욕망)을 향해 질주하고 이용 당하기만 합니다. 자기가 칼을 겨누지 않으면 언제 목이 따일지 모르는 긴박한 전개 속에 성찰할 시간은 없습니다. ‘돌풍’처럼 휘몰아칠 뿐입니다.
‘돌풍’이 지나간 뒤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돌풍은 ‘세상은 더러운 곳이니 어떻게든 더러운 것을 치워야한다’는 외마디 외침에 불과합니다. 그래서인지 돌풍의 정해진 결말 이후 ‘희망’을 떠올리기란 힘듭니다.
돌풍은 빠르게 몰아치는 이야기로 보는 재미가 있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마무리는 게으릅니다.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순진함과 모두 다 더럽다는 ‘양비론’ 그리고 친구의 유지를 받아든 검사 친구의 원칙주의. 또 최연숙 비서실장이 방주에 태워 둔 몇몇 의원들.
그들이 박동호가 원한 세상을 만들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돌풍의 마지막은 나태하고 무책임합니다.
이상 넷플릭스 드라마 돌풍 후기 돌풍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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